최일선에서 민원에 응대하는 이들을 제외하면 대개 공무원들이 하는 일은 외부에 사업을 발주하고 관리하는 커미셔너(commissioner)의 일이다. 주택과에 있든, 경제산업과에 있든 여성복지과에 있든 그들이 하는 주 업무는 그런 일들로 채워져 있다. 어떤 프로젝트를 해야하는지 타당성 조사도 외주고,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도 외주, 평가도 사실상 외주다. 공무원의 전문성은 돈의 집행을 문서화하고 조직의 위계에 따라 절차적 합리성을 구성하는 일에 집중된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완성이 아니듯, 문제는 그런데, 깔끔하게 추진되었다는 사업도 들여다 보면 왠지 와닿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청년일자리 문제의 해소책이 ‘일자리 엑스포 개최’...가 되는 식이다. 임기 내 완성을 목표로 대규모 건설 공사가 세금을 먹어 치우는 사이 서민의 삶을 위협하고 불안에 빠뜨리는 의료문제, 주거문제 같은 정작 중요한 것들은 뒷전인 느낌이다. 이러니 공무원들은 국민의 세금을 그냥 '쓰는 사람'에 불과해 보인다. 

조직의 미션에 따라 목표를 설정하고 생산적인 프로젝트에 창의적으로 예산을 집행하는 일이 원래 커미셔너의 일이다. 공자는 정치의 시작을 이름을 찾아주는 것이라 했다. 그래서 제안하자면 한국의 공공혁신도 공무원들에게 자신이 하는 일에 맞게 이름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 한다. 좋은 예가 있다. 영국 런던의 람베스구(Lambeth Council)는 2010년부터 협동조합형 지자체(Co-operative Council)로 전환을 선언하고 지난 연말, 수년에 걸친 조직개편 작업을 마무리 했다. 그래서 내놓은 세가지 주요기구가 있는데 이름하여, 1. Commissioning Cluster, 2. Delivery Cluster, 3. Enabling Cluster 가 그것이다. 구청의 조직을 1. 발주하고 2. 집행하며 3. 지원하는 일로 재구성한 것이다. 

실제 거의 모든 직원들의 직함은 커미셔너와 디렉터와 매니저로 바뀌었다. 커미셔너들은 사업의 목표(Social Value)를 설정하고 시민들과 함께 당면한 문제의 해법을 모색하는 프로젝트에 자원을 배분한다. 집행부서(Delivery Cluster)의 디렉터는 사업의 집행을 직접 챙기며 설정된 목표에 따른 효율성을 극대화 한다. 지원부서(Enabling Cluster)의 매니저들은 사업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필요한 재무, 공간, IT 등 지원 업무를 책임진다. 주택, 경제, 교육과 같은 기존 전문 분야들은 이 세가지 조직 안에 메트릭스로 결합하도록 설계 되었다.  

Lambeth Town Hall, London, Photo by K.Ahn

Lambeth Town Hall, London, Photo by K.Ahn

법적으로나 조직으로나 구청이 협동조합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협동조합 구청(Co-operative Council) 이 단순히 선언적으로 '협동조합'을 내세우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시민의 니즈(needs)에 부합하는 사회적 가치를 생산할 수 있다면 시민과 관공서의 벽을 허물고 공공서비스 자체를 협동조합화 할 수도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있었다. 행정 조직이 먼저가 아니라 공공서비스가 지향하는 목표와 가치를 먼저 생각하는 서비스디자인(Service Design) 혁신이다. 간접적으로 자금만 지원하는 '사회적기업 육성' 정책이 아니다. 시민과 행정이 가치를 공유하고 유기적으로 결합하니 상상하지 못했던 혁신이 발생한다. 말그대로 '사회적경제 활성화'의 모범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노인복지과와 청년일자리과가 있다. 이들은 어떻게 목표(outcome)를 나누는가? 전담부서 구조에서는 가치의 ‘공유’가 어렵다. 대신 한 조직 내에 있으면서도 실적(output)을 두고 '경쟁'하는 관계가 된다. 선택은 오로지 단체장 개인의 몫으로 돌아간다. 구조적으로 권위주의적이며 그만큼 행정의 자원이 낭비된다. 경쟁적으로 예산은 쓰이지만 그 결과에 대한 평가는 '여론'의 몫이거나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이게 현실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현실이지만 그것을 민주주의라 착각하고 있다. 협동조합구청까지는 아니더라도, 가치중심으로 조직을 재구성 해보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실험이 될 것이다. 

물론 단숨에 영국의 사례를 베끼자는 건 아니다. 람베스는 협동조합구청 선언 이후 기존의 거버넌스, 조직구조, 회계시스템 까지 모두 다시 설계했다. 꼬박 4년이 걸렸다. 한국에서도 그런 용감한 도전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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