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를 좋아하게 되었다. 큼직큼직한 사각형의 건물들과 붉은 벽돌, 그 사이를 흐르는 시커먼 운하는 산업시대의 감각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노란색 노면기차(tram)는 시대물 셋트장을 운행하는 궤도열차 같다.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밑바닥을 가장 먼저 발견한 도시, 협동의 가치와 생산성을 증명한 도시, 시대의 주류와 대안이 공존하는 영국 문명의 적통이 이곳이다. 협동조합의 발상지 로치데일(Rochdale)은 광역 맨체스터를 구성하는 열 개의 자치구 중 하나다.
200년 전, 축축한 날씨, 운하로 공급되는 풍부한 수량은 이곳을 방적산업의 적지로 만들었다. 우후죽순 공장과 창고 건물이 들어선다. 일년 사시사철 임금을 받고 일할 수 있다는 말에 땅을 떠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사람 입에 들어가는 모든 것은 자연으로부터 생산되는 것일 수 밖에 없다. 급격한 도시화는 당장 식료품 가격 폭등부터 경험하게 된다. 돈이 되는 밀가루에는 석회가루가 섞이고 버터에는 정체모를 기름이 섞였다. 가난이 일상이 되고 자본의 천박성이 극에 달했다.
1844년 최초의 근대적 협동조합이 조그만 식료품 가게로 부터 시작한 이유는 거기에 있다. 28명이 1파운드씩 내고 만든 그 가게는 일주일에 두 번 공장에서 퇴근한 밤에 문을 열었다. 근사한 가게도 마케팅도 필요 없었다. 조합원들만 이용할 수 있는 품질 좋은 물건만 가져다 놓았을 뿐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안전하고 깨끗한 먹을거리로 건강을 얻고 새로운 경제가 가능함을 증명했다. 170년이 지난 오늘날, 조그만 그 가게는 이름 그대로 ‘협동조합(The Co-operative)’ 라는 브랜드의 거대한 회사가 되었다. 이곳에서 협동조합은 주변화된 비주류 경제가 아니다.
그러나 협동조합은 경제 이전에 교육이고 학교다. 맨체스터에서 만난 협동조합 운동가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바다. 함께 생산하고 건강하게 소비하며 행복한 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자치, 책임, 민주주의와 같은 가치에 대한 공유가 필요하다. 협동조합을 운영하는 것은, 또는 협동조합으로 함께하는 것은 그러한 시민 교육활동의 하나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협동조합학교(Co-operative School) 운동의 취지다. 로치데일 선구자 협동조합이 탄생하기 전 1830년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협동조합학교 운동은 2008년, 공립학교를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운동으로 이어지더니 지금까지 무려 800개가 넘는 학교가 협동조합 거버넌스로 바뀌었다. 물론 그 모든 첫 걸음은 언제나 맨체스터로부터 였다.
학습이란 수업을 듣고 암기하는 것이 아니다. 배운다는 것은 경험한다는 것이다. 맨체스터는 영국의 평범한 공립학교들이 왜 어떻게 협동조합으로 변해 갔는지 체험으로 배울 수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