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dern Schizophrenia


삼성과 그 2대, 3대 상속자들이 문제였다가 지금은 한진의 2대 3대 상속자들이 또 한바탕 재벌가족의 추악한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여기서 상속자들이라는 표현을 빌려썼다. 익숙하게 모두, 그렇게 칭한다. ‘상속자’... 수천수만명의 직원들이 일하는 글로벌 기업을 마치 하나의 물건처럼 물려 받고 모두들 그들의 주인행세를 받아 들인다. 그리고 거창한 브랜드 간판 아래 그 수천수만명의 직원들은 일사분란하게 오너 한 개인의 이익을 위해 일하도록 구조화되어있다. 직업세계의 현실이다. 

다른 현실도 있다. 한때 에버랜드는 누구껍니까? 물으니 미키마우스 가면을 쓴 직원들이 어린이 여러분 껍니다라고 말했다는 우스개가 있었지만... 민주사회의 모든 공개된 기업은 고객에 서비스하고 사회에 공헌한다. 그들의 미션과 비전은 온갖 사회적가치로 가득차 있다. 이상적으로 그러하다는 게 아니다. 기업 활동을 규제하는 여러 법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성공적인 기업은 실제 그렇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해야 하고 약자를 보호하고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 정직하지 않고 성실하지 않고 지속가능성을 고민하지 않는 기업은 오늘날, 생존하기 어렵다. 최근 사태로 대한항공을 포함한 한진그룹 전체 시가총액은 3,000억원 넘게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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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보지 않는게 중요하다. 엄연히 두가지 현실이다. 거대한 정신분열과도 같은, 서로 다른 두 현실이 충돌하고 있다. 어느쪽을 진실에 가까운 것으로 받아들이냐가 그 사회의 수준일 뿐이다. 전자의 현실은 우리시대가 여전히 봉건적인 폐습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왕이 곧 국가였던 시대에서 다수 국민의 안녕과 행복을 위한 존재로 거듭난 근대 국가처럼, 기업도 전면적으로 근대화해야 한다. 요즘 시대에 어떻게 저런... 이라고 혀를 차는 것 보다, 일탈적 갑질을 고발하는 수준을 넘어, 기업을 ‘실제로’ 공공의 복리에 복무하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Republic vs. Commonweal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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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어떻게 개인에서 공공으로 근대화 되었나? 흔히 공화국(republic)과 동의어로 쓰지만 코먼웰스(commonwealth)라는 개념이 그 역할을 맡았다.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의 말이다. 홉스는 사회계약으로 탄생하는 국가(state)를 가상의 인간, 리바이어던(Leviathan)으로 묘사했고 그 실존을 코먼웰스로 정의했다. 이전의 국가가 왕을 위해 존재하는 킹덤(Kingdom)에 불과했다면 새로운 국가는 어느 한 인간을 위해 봉사하지 않고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작동한다. 리퍼블릭(republic, res-publica)은 절대왕정이 휘두르던 권력을 대중(public)에게 이양하는 권력 소유권 변화를 극적으로 묘사하는 표현이라면, 코먼웰스는 그 공화정이 무엇을 위해 작동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여전히 국왕(monarch)을 가진 왕국인 영국(United 'Kingdom')의 역사는 홉스의 시대 17세기 중반, 절대왕정을 주장하던 찰스1세를 참수하고 집권한 올리버 크롬웰의 공화정을 The Commonwealth 라고 불렀고 지금도 서로 다른 정체(政體)가 섞여있는 53개 국가의 영연방을 그렇게 부른다. 킹덤과 정치적 대척점에 있는 단어는 리퍼블릭이지만 권력을 소유의 관점에서 보기 쉬운 리퍼블릭은 쉽게 '킹덤화', 즉 대중의 지지를 빌어 독재자 개인의 지배를 정당화한다. 리퍼블릭이 코먼웰스의 개념을 잃을 때 그렇다. 미국, 러시아, 한국, 북한까지 모두 공화정(republic)을 표방하고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권력을 인격화하지 않는 코먼웰스가 어쩌면 리퍼블릭이라는 단어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변화를 담는 개념, 근대의 질서를 지탱하고 지향점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개념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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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onwealth Corporation


삼성이, 한진이, 현대가, 롯데가 그렇다. 여전히 킹덤이다. 이들 모두의 2대 주주는 국민연금, 실제 대다수 국민이 주인인 기업인데도 불구하고 창립자 개인 가족의 오너십이 절대적으로 지배한다. 주식은 이미 리퍼블릭 임에도 불구하고 코먼웰스의 개념이 작동하지 않으니 절대적 개인, 세습 창업자 가족에게 복무한다. 

제 아무리 선출된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국정원이, 기무사가, 청와대를 포함한 국가 조직이 한 개인을 위해 복무하면 법적 처벌을 피하기 어렵듯, 기업공개를 통해 국가와 시민의 기여가 축적되어 성장한 기업의 조직도 한 개인을 위해 복무하면 처벌을 피할 수 없어야 맞다. 국가가 한 명 대통령의 인격으로 축소되지 않고 대중의 안녕과 복리라는 독자적 가치로 작동해야 하듯, 기업도 대주주 개인이 아니라 기업 자체의 사회적 가치에 복무해야 하고 그에 반하는 행위는 철저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삼성의 이건희가 회사 소유의 건물에서 회사의 돈과 임직원을 동원해 추악한 짓을 저질렀다면 당장에 모든 직의 박탈은 물론, 브랜드 가치의 손상에 대한 배상으로 재산 몰수에 나섰어야 맞다. 땅콩회항으로 물의를 일으켜 국적기 브랜드의 가치를 손상시키고 국가의 격을 떨어뜨린 이에게 변상 조치를 하기는 커녕 몇 년 뒤 원래의 자리로 복귀시키는 건 무엇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경영진의 직무유기이다. 그것이 경영진의 최상위 책임자로 있는 그 애비의 후원 때문이었다면 그 역시 몇 배의 책임을 물어 배상하고 자리에서 도태케 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이건 사회주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오히려 더욱 철저한 자본주의다. 

87년 노동조합설립운동이 마침내 한진촛불로 진화했다. 한진이 바뀌고, 삼성이 바뀌고, 현대가 바뀌고, 롯데, 엘지, 에스케이가 바뀌어 코먼웰스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다면 대한민국은 세계사의 진짜 민주주의를 쓰게 된다. 국민이 이들 기업의 성공을 돕는 진짜 대주주다. 더더욱 승승장구 할 것이다. 역설적으로... 부정적으로만 읽히던 사회 전 영역의 국가주도성, 초집중의 재벌경제를 가진 한국만이 가능한 시나리오다. 세계 어느 주요 나라도 이렇게 할 수 없다. 이것이 진정한 한국식 사회혁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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