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에게 자신을 소개하라면 'I am Tom' 이다. 'My name is Tom' 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반면 우리는 '나는 철수다'라고 하지 않는다. '제 '이름'은 안철수 입니다'라고 한다. '이름은' 안철수다 했으니, '그럼 진짜 당신은 누구인가?' 라는 의문이 뒤 따른다. 그래서 어지간한 ‘사’자 들어간 사람 아니면 자기가 속한 '회사' 이름을 댄다. 직장 또는 회사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영혼 없는 직장인은 이렇게 우리 언어생활에 뿌리 박혀있다. Tom의 선생님이 메일을 보내왔다. ’Tom is a good artist’ 라고 썼다. ‘He is good at art’ 가 아니다. 반면 우리말은 '나는 가수다'가 TV프로그램의 타이틀로 쓰일 만큼 강력한 주장을 내포한 것이다.
언어에 옮고 그름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만들어내는 효과와 현상을 분석해 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우리 언어 습관에는 무언가 끊임없이 정면승부를 회피한다는 느낌이 든다. 내 이름 이전의 나는 '다른 나' 인가? 그 다른 나를 숨기면 지금의 나는 용서 받을 수 있는가? '이 아이는 그림을 잘 그려요' 라고 말하지만 그 언술의 이면엔 아이는 아이일 뿐, 그의 그림은 여전히 미숙하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반면 영국인들에게 '나'는 바로 지금 '당신 앞에 말하고 있는 나'로 정직하며 아이의 그림은 한 인격체가 생산해 낸 작품으로 인정 받는다. 이렇게 서로 다른 언어 습관이 개인적으로 수십년, 역사적으로 수백년 이어졌다고 생각해 보자. 그 자존감과 자긍심에서, 현재를 바라보는 긍정적 태도와 문제해결의 적극성에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산업혁명과 자본주의가 여기서 시작됐고 그 파행의 대안으로서 협동조합이 고안된 곳 역시 이 곳 영국이다. 그 최초의 협동조합이 내세운 제 1의 가치는 '스스로(Self-Help)' 였다. 이에 반해 우리는 여차하면 '사람 불러야지...' 한다. 몇 년 전 개그콘서트에서 유행했던 말이기도 하다. 해외 우수사례 도입이 모든 일의 시작이다. 우리가 영국으로부터 배우는 것은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고 Self-Help 하려는 질문과 태도이지 그들의 프로그램을 베끼는 것이 아니다. 손쉽게 '사람 부르는' 마인드는 생각해 보면 한심함을 넘어 아찔한 일이다. 이는 문명적 태도와 깊은 관계가 있다. 아직 우리 한민족은 문명이란 걸 이룬 바가 없다. 인류 역사에 문명이라 할만한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니 스스로를 폄할 필요는 없다. 다만, 우리도 이제 좀 더 용감해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프로처럼 사진을 찍는 한가지 비법이 있다. 피사체를 정면에서 바라보고 찍는 것이다. 가식없이 심플한 구도의 사진이 좋은 사진이다. 반면 아마추어의 사진은 대체로 사선이다. 구경꾼의 시선이다. 한 장 한 장을 두고보면 잘 보이지 않는다. 사진 여러 장을 나열해 놓고 한꺼번에 보면 그 어긋난 시선이 뚜렷이 보인다. 지금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 갤러리를 다시 보시라. 단순히 찍는 행위에만 집착한 것일 수록 화면을 가로지르는 선과 면들이 이리삐뚤 저리삐뚤 어지러울 것이다. 프로페셔널은 피사체를 자신있게 정면으로 직시하며 그것의 본질을 드러내고자 한다면,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아마추어는 자신이 담아내고자 하는 그 무엇은 '회피'한 채 셔터를 누르는 당장의 행위에 조급하다.
발견하고 드러내고자 하는 무엇, 문제의 핵심 그 자체에 집중하고 용감하게 정면승부하는 자세... 다른 것 없다, 그것이 혁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