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라 할 수 없는 평범한 시민 한 명 한 명이 암 치료제 개발에 기여하고, 우주에 떠다니는 새로운 행성을 발견하고,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보호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어떨까? 현대 과학은 우주 행성 사진을 찍어 지구로 보내고, 아프리카 초원 야생 동물의 생활을 24시간 무인 카메라로 촬영하며, 우리 몸 속 작은 세포 하나하나까지 관찰 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였다. 신기술이 쏟아내는 정보들은 인터넷의 힘을 빌려 세계 어느 곳에서든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주니버스’라는 시민 참여 과학 프로젝트는 디지털 기술이 보이는 방대한 데이터 수집능력과 분석능력에 인간의 인지능력을 연결한다.

www.zooniverse.org

www.zooniverse.org

2007년 옥스포드대학교의 천문학자 크리스 린토트(Chris Lintott)와 그의 동료들은 ‘갤럭시 동물원’ 이라는 그들의 웹사이트에 70,000장의 사진을 공개하며 일반인들에게 분석을 요청하였다. 갤럭시 동물원은 24시간만에 70,000장의 분석된 사진을 받았고 그 후 1년간 5천 만장의 천체 사진이 일반인들에 의해 분석되었다. 이 사이트는 현재도 활발히 운영되고 있으며 갤럭시 동물원을 시작으로 린토트 박사는 2009년 주니버스(www.zooniverse.org)라는 시민 참여 과학 프로젝트 플랫폼을 개설하였다. 주니버스에서는 의학, 지질학, 생물학,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과학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1세기의 과학자들은 예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많은 양의 데이터를 다루고 있다. 어떤 학자들은 이를 데이터 폭발이라고도 한다. 방대한 자료를 다루기 시작한 과학자들은 더 많은 컴퓨터를 이용하고 더 많은 과학자나 학생들을 고용하여 분석을 시도하였지만 그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컴퓨터가 이 데이터들을 분석해 내는데 도움을 주지만, 숫자나 통계가 아닌 사람의 눈으로 이미지를 직접 관찰하고 무엇인가 다른 패턴을 인지해내는 작업은 엄청난 시간과 자원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생각해 낸 방법이 대중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이는 비즈니스 및 마케팅 분야에서 각광 받고 있고 이미 우리 생활에 깊숙이 뿌리내린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을 과학연구에 적용한 것이다.

크라우드 소싱은 크라우드(대중)과 아웃소싱(위탁)의 합성어로 대중의 지식과 지혜, 즉 대중의 지성으로 정확하고 믿을 만한 결과물을 얻어 내는 것을 말한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을 산 후 구매 후기를 쓰는 일, 신제품을 사용해 보고 사용 후기를 알려 주는 일 등 기업 경영, 마케팅 등 여러 분야에서 크라우드 소싱은 없어서는 안 될 집단지성에 기반한 의사결정 과정의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주니버스가 진행하는 과학 연구 프로젝트도 데이터 분석 방법의 하나로 크라우드 소싱을 활용하고 있다.

주니버스는 세계에서 가장 활성화 된, 누구나 연구원이 될 수 있는 시민참여 연구 플랫폼이다. 주니버스의 운영 단체인 [시민 과학 연합]은 과학 발전을 돕고자 하는 전 세계 인적 자원(대부분이 자원봉사자)을 모아 과학자들과 연결시켜 준다. 참여하게 된 동기도 목적도 나이도 교육 수준도 다르다. 옥스포스대학교에서 최근 주니버스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응답자 300명의 나이가 20대부터 70대까지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참여 방법도 생각보다 간단하다. 모잠피크 고롱고사 국립공원의 생태계 보호 프로젝트에 도움을 주고 싶다면 주니버스 웹사이트로 들어가 고롱고사 프로젝트를 클릭해 보자. 간단한 사전 교육과 함께 일련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 준다. 사진을 보며 어떤 동물 몇 마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클릭 몇 번으로 알려 주면 된다. 우리가 어려워하는 주관식 과제는 다행히 없다. 분석 후 진행되는 다른 참여자나 전문가들과의 온라인 토론이 싫다면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 실제로 해보면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것 같다. 동물이 한 마리도 없는 초원 사진만을 몇 십장 보다가 갑자기 원숭이 한 마리라도 발견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화석에 관심이 많은 아이가 화석 찾기 프로젝트를 클릭한다면 케냐 사막 화석 사진들이 뜬다. 어린 시절 천문학자의 꿈을 가졌던 직장인은 은하계의 사진을 분석할 수 있다. 사진과 관련된 내용을 나와 비슷한 관심을 갖고 있는 다른 자원봉사자나 전문가와 토론하고 싶다면 갤럭시 동물원 프로젝트를 클릭하면 된다. 개인이나 기업에 이윤을 남기기 위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과학에 대한 열정과 관심에 기반하여 그 과정에 참여하고자하는 시민을 위한 프로젝트를 찾을 수 있다.

주니버스는 현재까지 10개 이상의 시민 참여 과학 프로젝트를 완료하였고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37개이다. 자원봉사자로 등록한 사람은 2014년 2월 기준, 100만 명을 넘어섰다. 이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학계와 기관들도 영국의 옥스포드대학교, 영국국립해양박물관, 미국의 미네소타대학교, 존스홉킨스대학교 등 매우 다양하다.

주니버스를 통해 진행되는 과학연구 프로젝트가 여타 과학연구 프로젝트와 구별되는 점은 무엇일까? 주니버스라는 시민참여 연구 플랫폼의 강점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 짧은 기간 안에 가능한 방대한 양의 데이터 분석 : 실제로 ‘갤럭시 동물원’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 대학원생들이 3년 반에 걸쳐 분석할 수 있는 자료의 양을 일반인들은 6개월 만에 끝냈다.
  • 집단지성을 이용한 검증과정 : 소수 과학자들만이 수행해오던 작업과는 달리, 많은 수의 일반인들이 수행하는 상호 검증 과정을 거치므로 오류 발생의 확률이 급격히 줄어든다. 오류뿐 아니라 여전히 가끔씩 터져 나오는 과학자들의 의도적 데이터 및 실험 결과의 조작과 같은 비윤리적 행위를 밝혀낼 수도 있다.
  • 인간만이 보유한 인지능력의 활용 : 컴퓨터로 발견하기 매우 어려운 뜻밖의 성과를 사람들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인간의 눈은 비슷해보이는 이미지에서도 이상한 것, 특별한 것을 인지할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이 있다. 특히 이미 깊은 지식으로 중무장된 과학자들이 발견하지 못하는 새로운 패턴을 초심자인 일반인들이 발견해 내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익숙하지 않은 것을 새로운 눈으로 바로보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놓치고 있는 패턴을 발견하는 사례이다.
  • 뛰어난 과학교육의 장 : 시민 참여 과학 플랫폼은 공식 또는 비공식적인 과학 교육의 새로운 기회이다. 또한 과학 프로젝트의 참여를 통해 전체 프로젝트의 과정을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직접 과학 발전에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참여자의 관심지속도와 이해도는 증가된다.

이상과 같은 장점을 갖고 있는 시민참여 연구의 어려운 점은 없을까? 가장 잘 알려진 어려움으로는 시민연구자들의 참여의 지속성이다. 과학적 호기심과 열정으로 참여하던 시민연구자들이 참여과정상의 비효율성이나 단순작업에서 비롯된 지루함으로 참여를 중단하는 사례들이 종종 있다. 이들이 갖고 있는 초심의 열정과 호기심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주니버스 플랫폼에서 최근에 수행했던 ‘셀 슬라이더 프로젝트’는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시민참여 연구방법의 효율성과 흥미를 가미한 새로운 방법을 제안하였다. 특히 단순한 과학적 호기심을 떠나 연구과정에 보다 적극적인 기여를 하고 싶어 하는 참여자를 위하여 보다 강렬하고 효율적인 참여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적은 다양한 치료 방법들이 각기 다른 종류의 암세포와 체질이 다른 환자에게 어떻게 반응하느냐를 찾는 것이었다. 시민연구자들은 암으로 고생하는 자신과 주변의 지인을 떠올리며 암세포 영상을 분석했다.

영국에 살고 있는 47살 클레어의 엄마는 몇 년 전 암으로 돌아가셨고 남편도 2012년 피부암에 걸렸다. 친구와 친지들에게도 암은 그리 멀리 있는 병이 아니다. 클레어는 오랫동안 암연구 센터에 돈을 기부했지만 이 돈이 실제로 어떻게 암치료에 도움이 되는지 알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영국 암연구 센터와 주니버스가 함께 추진했던 셀 슬라이더라는 프로젝트를 듣고 클레어는 바로 암세포 연구 참여자가 되었다. 셀 슬라이더는 암세포 연구원들이 올려놓은 수백만 장의 세포 사진을 보고 간단한 질문에 답하는 형식이나 온라인 게임을 하는 형식으로 일반인이 사진을 분석하는 프로젝트이다. 클레어는 매일 시간이 날 때마다 노트북을 들고 소파에 앉아 연구원들이 올려놓은 사진을 보고 사진에 달린 질문에 답했다. 사진 한 장을 여러 사람이 함께 분석하니 실수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할 필요도 없다.

셀 슬라이더 프로젝트는 많은 의학 및 소프트웨어 전문가의 자발적인 도움을 받았다. 2012년 5월 런던 과학박물관에 영국 암 연구소 연구원, 주니버스 연구원, 소프트웨어 전문가 50명이 이틀 동안 모였다. 이들의 임무는 방대한 양의 암세포 사진을 일반인들이 분석할 수 있도록 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대한 아이디어를 48시간 안에 만들어 내는 일이었다. 암 연구소 연구원들은 분석해내야 하는 세포들의 특징에 대해 소프트웨어 전문가들에게 설명하였고 주니버스 연구원들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과 함께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많은 토론을 했다. 이틀간의 토론과 아이디어를 토대로 암세포 분석 게임과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그 해 10월 24일 셀 슬라이더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영국 암연구 센터의 폴 파로아(Paul Pharoah) 교수는 클레어 같은 일반인 연구자의 시간과 노력은 최첨단 기술로는 얻을 수 없는 소중한 자원이라고 얘기한다. 프로젝트를 시작한지 3개월 만에 온라인 참여자들은 연구원들이 18개월 동안 분석해야 할 분량의 사진들을 분석해냈고 목표했던 250여만 장의 암세포 사진들을 모두 분석한 뒤 셀 슬라이더 프로젝트는 종료되었다. 셀 슬라이더 프로젝트는 보다 많은 수의 잠재적 시민과학 연구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전문적인 과학연구에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 프로젝트이다. 시민들은 과학적 호기심과 기여하고자하는 마음에 참여했지만 데이터 수집이나 영상 패턴 분석 등의 어찌 보면 반복적이고 지루할 수 있는 작업이다. 이에 시민들이 보다 흥미롭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컴퓨터 게임이나 사용법이 쉬운 소프트웨어를 제공했다. 이는 아마추어들의 과학연구 프로젝트 참여의 효과에 반신반의하던 과학계가 시민 참여의 중요성을 깨닫고 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참여방식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http://arf.berkeley.edu/then-dig/2011/08/digging-in-the-dark/

http://arf.berkeley.edu/then-dig/2011/08/digging-in-the-dark/

주니버스 프로젝트들을 보면 과학이 일반인들에게 얼마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지, 과학에 가깝게 다가간 대중의 힘과 기여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 준다. 주니버스에서는 이미 모아진 과학데이터를 분석하거나 새로운 패턴을 인지하는 과정에서 시민의 참여를 활용하였다. 하지만 시민참여 과학연구는 이러한 분야 이외에서도 다양하게 시도되며 그 사례도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새로운 과학적 질문의 제시, 다양한 환경이나 재난 데이터의 수집과정에서의 시민참여, 수집된 데이터의 1차 필터링 과정이나 인간의 시각, 청각 등을 이용한 패턴 분석 과정, 과학모델의 테스트와 검증 과정 등 다수의 참여가 과학적 연구의 효율성과 정확성을 증가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는 곳이라면 시민참여 방법이 고려되고 있다. 

주니버스를 포함해 다양한 시민참여 연구가 가능해진 것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기인한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시민참여 연구의 방법과 과정의 공통적 특징은 불특정 다수의 다양한 시간과 공간에서 과학연구 참여가 가능해진 것이다. 과학연구란 그동안 밝혀지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그와 관련된 데이터를 모아 분석해내고 평가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발견을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보다 광범위한” 데이터와 분석, 평가가 이루어진다면 새로운 발견의 정확도는 높아지게 된다. 디지털 기술이 새롭게 제공하고 있는 빅 데이터 수집 능력, 모아진 데이터의 공개화, 분산되어 있는 인간들을 이어주는 네트워크화는 바로 “보다 광범위한” 데이터 수집과 분석, 평가를 가능하게 하는 요소이다. 디지털 기술이 마련해놓은 새로운 연구방법의 가능성이 열리자, 엘리트 전문 과학자들만이 참여 가능하던 연구 작업에 시민들이 초대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진화과정이다. 

www.nesta.org.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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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제기된 사회의 니즈(needs), 오랫동안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사회의 니즈를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해내는 시도를 좁은 의미의 사회혁신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가 실제로 사회의 욕구를 충족해내고, 그것이 한 사회에 새로운 시스템으로 자리 잡아 사회 전체의 역량이 확대되는 것은 보다 넓은 의미의 사회혁신으로 간주된다. 좁은 의미의 디지털 사회혁신이란 이러한 사회혁신의 정의에 비추어볼 때 새롭거나 오랫동안 만족시키지 못했던 사회의 욕구들을 새롭게 개발된 디지털 기술로 해결해나가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이 제공하는 개방성과 분산화 되어 있던 대중들의 네트워크화와 세력화를 통해 사회의 니즈를 충족해주는 사례들이 점차로 증가하고 있다. 

주니버스 사례에서 살펴본 시민참여 연구는 과학 데이터 및 연구과정의 개방화, 연구 참여자의 네트워크화 등을 통하여 기존의 연구과정에서 만들어낼 수 없었던 정확도와 효율성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방식의 연구 방법이다. 또한 디지털 사회혁신의 핵심요소로 이해되는 개방성과 분산성에 기인한 “참여”, “관계맺기, “공동생산하기” 등이 과학이 결정하는 시대의 흐름에 좀 더 민주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내보이고 있다. 연구과정에 “참여”하고, 비슷한 시민 연구자 및 전문 과학자와 “관계맺기”를 하고, 연구결과를 “공동생산” 하면서 시민 참여자의 쉽게 다가가지 못할법한 과학영역에 대한 이해와 관심도는 배가된다. 과학 기술발전이 얼마나 한 인간과 현대사회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고려해볼 때, 보다 많은 시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과학연구 기회의 증가는 유의미하다. 과학기술이 만들어나가는 미래사회에 대한 방향 결정에도 몇몇 엘리트 과학자와 이를 이해하는 몇몇 정책입안자에 의해 내려지는 것이 아니라, 보다 많은 시민이 참여하는 민주적인 방식의 적용이 확대될 수 있음을 예측해본다. 복잡하고 전문적인 과학 연구도 소수 과학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글: 김미경, 김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