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은 다른 나라의 비슷한 정책 사례로 부터 배우는 바가 클 것이다. 제3섹터 역시 그들 유사 부문과 교류하면서 역량을 키워간다. 시장의 기업들이 타사의 경쟁 제품을 연구하는 이유와 같다. 정부 또는 시민영역은 서로 협력하는 또는 협력해야 하는 관계이고 기업은 이윤을 두고 경쟁하는 관계라는 점에서 다르지만 어떻든 모든 경제는 유사 영역의 우수한 실천들과 함께 질서를 구축하고 성숙해 간다.
혁신은 다르다. 혁신은 서로 다른 경제 영역을 넘나들며 통찰할 때 발생한다. 기업은 시장 너머의 사람을 볼 수 있어야 혁신할 수 있고 정부는 각 영역의 비전을 사회의 목표와 조화시킬 줄 아는 정치가 작동할 때 혁신할 수 있다. 제3섹터는 주류 경제에서 소외된 영역에 웅크리고 머무는게 아니라 작동하지 않는 시장과 국가의 혁신을 이끌어 내는 견인차가 되어야 한다.
한국의 지방 정부가 영국의 커뮤니티 기관을 방문하는 것은 그들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배우려는 때문이 아니다. 때론 시장을 주도하고, 때론 공공서비스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그들이야말로 경계를 넘나드는 사회혁신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부동산 개발자(Coin Street Community Builders)이며, 공공서비스 제공자(Paddington Development Trust, Hackney Co-operative Development)이자, 정부와 커뮤니티를 잇는 컨설턴트(Social Life)이거나 창의산업의 프로모터(Hackney WickED)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자치역량을 갖춘 시민사회와 일하기 위해 행정은 어떻게 혁신 하는지 런던의 람베스 구청(London Borough of Lambeth)이 그 예가 된다. 협동조합 지자체 람베스는 시민사회의 자치를 조직하고 후원하는 새로운 공공서비스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경계(silos) 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조직의 실적(output)이 아닌 함께 가야할 목표(outcome)가 보인다. 그리고 그 목표를 위해 행정 조직 자체를 재편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경계 안에서 보면 이들의 도전을 이해하기 어렵다.
'땅은 소유의 출발이다.' [토지]를 쓴 박경리 선생의 일갈이다. 영국의 커뮤니티 사업들이 대부분 공동체 소유의 땅과 건물에서부터 자생력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은 의미 심장하다. 자산 공유 운동이 사적 소유에 기반한 이윤 추구 경향으로부터 이들을 한 발 짝 떨어질 수 있게 한다. 돈이 아니라 일이 우선이다. 가치있는 일에 기여하고 필요한 만큼 보상 받는다. 수십 수백억 규모의 사업을 진행하면서도 잡음이 생기지 않는 이유다. 한국처럼 행정이 실권을 갖고 '지원'하는 구도에선 이런 문화가 생기지 않는다.
땅에 대한 공공의 인식이 확대되면 개발 사업에서 이해 관계자의 관점도 달라질 수 있다. 15년째 재개발 사업 중인 킹스크로스의 자본과 민간 개발업자는 단기적 이윤에 집착하지 않았다. 개발의 다른 한 축인 정치도 랜드마크형 건설로 시민의 눈을 현혹하려 하지 않는다. 이들이 자선사업가이거나 착해서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그것이 더 큰 돈과 표로 되돌아 오는 현명한 선택임을 알기 때문이다. 도시재생이든 재개발이든 용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가치와 목표에 대한 합의가 먼저다.
자전거 이용을 늘이는 법, 도로와 주차시설을 최소화 하는 것이다. 도로를 넓히면 자동차 이용만 늘어날 뿐이다. 자동차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규제의 목표가 되는 곳이 런던이다. 땅에 대한 권리는 사회적 책임을 수반한다는 사실은 지구를 나누며 사는 인류의 문명적 합의 같은 것이다. 도시재생은 인간의 사회성을 전제한 도시 혁신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