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로 따지면 작은 섬나라에 불과한 영국이 근대문명을 주도하는 힘은 한 시대의 통념을 절대시 하지 않는 용기에 있다. 영국이 어떤 나라인가? 산업혁명에 이어, 자본주의라는 아이디어가 숨통을 틘 곳이다. 내가 만들었으니 내가 바꾼다는 자부심이라 해도 좋다. 스코틀랜드의 토지개혁도 그 예다. 근대적이지만 결코 자본주의적이지 않는 초근대적 토지개혁의 묘법이 여기 숨어있다.
1707년 합병법(Act of Union)이 통과되고 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를 포함하는 대영의회가 설치된 이후(북아일랜드는 1801년에 합병된다) 292년이 지난 1999년, 스코틀랜드 의회가 부활한다. 아직 완전히 분리독립(independence)은 아닌 분권(devolution) 수준이지만(스코틀랜드의 완전 분리독립을 위한 국민투표는 2014년 부결되었다) 스코틀랜드로서는 근대국민국가로서 첫 걸음을 뗀 사건이라 할 만한다. 모든 근대국가의 첫과업이 그러했듯, 토지개혁은 분권에 성공한 스코틀랜드 의회의 첫번째 사업이 된다. 그렇게 3년의 검토를 거쳐 2003년 스코틀랜드 토지개혁법(Land Reform Act 2003)이 발효되는데 그 주요내용은 세가지다.
1. 국유, 사유에 상관없이 산, 들, 호수 등 모든 오픈공간의 자유로운 통행 보장(Access Rights)
2. 공동체의 토지매입 우선권(The Community Right to Buy)
3. 소작농 공동체에 의한 농지매입 우선권(The Crofting Community Right to Buy)
여기서 핵심은 커뮤니티,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서 소작농 또는 지역 공동체, 마을 단위에게 토지매입 우선권을 준다는 점이다. 부르조아 혁명기에 신성불가침의 인권으로 삽입되었던 개인의 재산권에 우선하는 공동체의 생존권을 인정한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의 공동체 토지 소유는 1908년, 스카이섬의 글렌데일(Grendale) 농장의 예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국가가 지주와 소작농간 분쟁이 있는 땅을 매입, 50년거치 상환을 조건으로 소작농위원회에 소유권을 넘긴 것이다. 이때도 소유권을 양도 받은 것은 개인 아니라 소작농위원회(The Crofters Commission , 지금은 The Glendale Estate)라는 공동체였다. 2003년의 토지개혁은 그러한 공동체의 집합적 토지소유, 운영의 권한을 일반화 해 개인재산권보다 원칙적으로 우선하는 것으로 법제화한 것이다.
스코틀랜드는 전체 토지 면적의 50%가 400여 대지주 가문에 귀속되어 있을 만큼 토지 소유의 집중도가 높은 곳이지만 2003년 이 토지개혁 조치 이후 특히 헤브리디스(Hebrides)라 불리는 하이랜드구(Highland Council) 서쪽 지역 섬 약 50%가 공동체 소유, 관리로 넘어갔다. 올해 4월, 한 개인에 의한 토지 소유 면적의 상한제 같은 조항이 막판 진통 끝에 빠지긴 했지만, 개정된 토지개혁법은 땅을 일구어 사는 농민과 마을 주민의 권리를 더욱 강화하는 제도적 장치를 보완하고, 공동체 토지매입(Community Buy-out)을 금전적으로 지원하는 토지기금(Scottish Land Fund)을 매년 £10m(약 170억원)으로 기존의 세 배 규모로 확대 했다.
자본주의는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 사이 '관계'의 부정에서 출발한다. 농민들을 땅으로부터 떼어내어 도시로 이주시키고, 노동자를 가족과 이웃으로부터 떼어내어 조직의 규율에 종속시킨다. 그게 '모던타임즈'다. 사사로운 개인의 부유하는 삶, 그것이 자본주의가 빚어낸 대표적인 삶의 양태다.
그런 최첨단의 자본주의적 삶이 횡행해야 할 영국이 지금 멀쩡한 공유지에 철조망을 치고(Enclosure), 대대적인 농민 축출(Highland Clearance)에 나섰던 땅을, 소작농과 주민들에게 되돌려주는 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개인을 공동체로 복원시키고 농민에게 땅을 되돌려 주는 것이다. 소유권이 어떤 권리인가? 프랑스 혁명 이후 천부인권으로 칭송되던 권리다. 그것이 자연권이 아니라 ‘도둑질’에 불과하다는 주장(푸르동, Pierre-Joseph Proudhon)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300년 이 문명을 관통했던 가장 중요한 통념이 바로 사유재산권이었다.
2016년 연말, 우리는 가히 혁명적 상황을 경험했다. 200만이 넘는 촛불이 단순히 사유화한 권력에 대한 응징이었을 뿐이라면 그 촛불은 평화를 지키지 못했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탄핵 그 너머가 있었기에 평화를 유지하며 우리의 자존과 명예를 지켰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이런 사태를 빚어낸 좀 더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더 폭넓게 토론하고 나누어야 한다. 무능한 대통령 끌어내리는 것은 변화의 시작은 될 수 있어도 종착역은 거기가 아니다. 탄핵 여론조사와 국회의원들의 탄핵 표결 득표율이 같다는 이유로 대의제가 온전히 작동하고 있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통념도 부정할 줄 아는 영국인의 담대함이 과연 우리에게 있는가?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