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인구 절반 이상이 도시에 살고있고 그 비중은 더 커져 간다. 인간 소외라는 현대사회의 물신주의적 속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곳이 도시다. 산업혁명이 토지로부터 노동을 분리시키고 도시는 그 노동이 상품화한 공간이다. 첨단의 욕망과 무제한의 소비가 넘쳐나는 그 곳에는 동시대의 인간과 삶이 최대한으로 집적되어 있다. 7-80년대 600만에 그쳤던 런던 인구는 작년 800만을 넘어서 다시 가파른 상승세에 있다.
규모의 경제, 집중에 의한 효율은 생각처럼 간단히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집적 그 자체에 따른 사회 문제들이 발생한다. 심화되고 있는 양극화와 빈곤, 교육 격차와 대규모 재난 등의 문제는 모두 도시화 이후의 것들이다. 그러한 문제들에 대응한 또다른 시스템과 서비스까지 개발되면서 집적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사실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때론 그것조차 생산력으로 포장되지만, 엄밀히 그것은 소비에 소비를 덧붙이는 지구적 낭비다. 사회혁신(social innovation)은 그 거대한 낭비의 구조 안에 매몰되지 않고 인간 본연의 생명력을 되찾는 노력이다.
유럽의 도시는 왕국(Kingdom) 시대의 문명과 모순 투성이 현대사회의 공존에서 그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역설적으로 절대주의 시대의 문화가 자본주의의 한계를 상대화 하는 조건이 되고 있다. 초고도의 서울이 조선을 넘어 백제의 역사와도 대화하려는 뜻 또한 거기에 있을 것이다. 런던(London)은 자본주의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면서 동시에 여전히 군주제(monarchy)가 작동하는 기묘한 공간이다. 150년 전, 도시화로 발생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처음으로 공공서비스라는 개념을 발전시킨 이곳은 지금, 시민 자치와 협동의 역량에 기대어 시장과 국가의 역할을 재구성하는 도전에 나서고 있다.
도시 재생은 도시의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도시 재생은 오래된 것의 외양을 상품화하는 것을 넘어서 그 안에 보편적인 인간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그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실험하고 확장하는 것이 도시 재생의 궁극적 과제다. 평화로운 레치워스(Letchworth) 가든시티가 품었던 유토피아적 상상력, 가장 런던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국제적인 전통시장, 보로 마켓(Borough Market)의 운영 시스템 그리고 15년째 도시재생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 킹스크로스(King's Cross)의 사례에서 확인하는 것은 당장의 이윤과 제도에 사로잡히지 않는 실험정신, 인간에 대한 신뢰 그리고 용기의 문화다.
무언가 ‘안다’(知)는 것은 결국 ‘사람을 아는 것’(知人)이라 했다. 철저한 인문학이다. 모든 혁신은 인문학적 양식과 반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기술혁신, 경영혁신도 마찬가지다. 공공혁신, 사회혁신은 더 말 할 나위가 없다. 탁월한 개인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혁신이 아니다. 데이터에 불과한 자료를 지식으로 담아 놓는 것만으로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다른 공간을 사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역사(he/she + story)와 공감하는 것, 그렇게 동시대를 반성하며 자신만의 새로운 스토리를 찾고 만들어 가는 일, 그것이 공부(study visit)다. 영국과 런던을 공부하는 것은 지난 200년의 통념을 뒤집어 성찰하는 것이다.